서울 삼성 썬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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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한국프로농구의 프로 농구단. 연고지는 서울특별시. 홈구장은 송파구 잠실동에 위치한 잠실실내체육관이다. 전신은 삼성 남자 농구단 - 삼성전자 농구단 - 수원 삼성 썬더스 농구단. 연고지를 옮긴 이후부터는 서울 삼성 썬더스 농구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참고로 현존하는 남자 농구단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동안 팀의 주인이 바뀌지 않은 전통의 팀이다.[7]'''즐겁게 나눠요 우리 모두 다 함께'''
'''파워를 느낄 수 있는 삼성 썬더스'''
'''사랑해 사랑해 모두 이길 수 있죠'''
'''서울 삼성 썬더스'''[6]
2000-01 시즌 이후, 중립 지역이었던 서울 연고가 허용되면서 서울 SK 나이츠와 함께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연고 이전 초창기에는 잠실실내체육관을 SK와 함께 사용했다가, SK가 잠실학생체육관으로 이사가면서 잠실실내체육관의 유일한 홈팀이 되었다.
농구 대잔치 시절에는 삼성 라이온즈의 마스코트인 블레오를 이쪽에서 우려 먹기도 했으며, 럭비단이나 배드민턴단, 배구단에서도 우려먹었다. 물론 야구와는 다르게 타이즈 복장이고 눈은 검정색이지만. 수원 삼성 썬더스로 프로 창단 시에는 '썬더보그'라는 머리와 꼬리에 천둥번개 모양이 달린 고릴라형 마스코트를 사용하기도 했다. 현재 마스코트는 연파랑색 썬더스 마스코트와 천이와 둥이.
삼성스포츠의 프로 스포츠 구단 중 수원 삼성 블루윙즈, 삼성 라이온즈, 삼성전자 칸, 삼성 갤럭시 등과 함께 자체적으로 유망주를 육성하여 성공시킨 구단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다. KBL의 엄격한 샐러리 캡과 외국인 선수 연봉 제한 때문에 크게 쏘려고 해도 쏠 수가 없는 탓도 있긴 하지만(...)[8] 그러나 9시즌에 걸친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로 인한 쓸 만한 신인 부재, 김상준 감독 취임과 동시에 바뀐 프런트의 소홀한 전력 보강 등 문제점을 노출하며 농구 팬들에게 까이고 있었다. 그러다 이상민 감독 취임 이후 첫 시즌이 대망하자 감독과 프런트가 합심하여 대대적인 전력보강에 나섰고, 15~16시즌부터 성적이 다시 나아지면서 이런 까임을 잦아들었다. 그러나 16-17시즌 준우승 이후 두 시즌 연속 PS 진출 실패와 18-19시즌 최하위로 다시 약체팀이 된 상태.
기존의 모기업은 삼성전자였으나 2014년 9월 1일부로 제일기획으로 전환되었다.
2. 우승 기록
3. 역사
서울 삼성 썬더스/역사 문서 참조.
4. 영구결번
영구결번은 10번으로 김현준 코치의 현역 시절 등번호이기도 하다. 이상민과 서장훈의 11번이 영구결번 될 뻔 했으나[9] 영구결번 지정 한 시간만에 철회했고 현재 천기범이 11번을 달고 있다. 영구결번 배너는 현재의 파랑색이 아니라 농구대잔치 시절의 빨강색 유니폼이다. 2019-2020 시즌 기준으로 영구결번 배너는 잠실실내체육관 기자석 테이블에 래핑돼있다.
농구팬들 사이에서는 다른 팀들에 비해서 삼성이 유독 영구결번 기준이 짜다고 말한다. 똑같이 영구결번이 1명인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는 KBL 출범 직전이던 1996년에 창단됐지만 삼성은 '''실업 농구단 시절까지의 역사를 포함해서 40년이나 되었는데도''' 단 1명 뿐이다.
5. 상징적 인물
- 상징적 인물을 이야기하면 역시 현재까지 삼성의 유일한 영구결번인 김현준 코치를 이야기 할 수 있다. 모기업의 이름을 따서 전자슈터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면서 삼성전자 시절 농구대잔치에서 기록을 써내려갔었던 레전드 선수였다.
- 두 번째 인물은 김진 前 동양-LG 감독이다. 김진 감독은 선수 시절 커리어를 삼성전자에서만 뛰었던 프랜차이즈 선수였다. 특히 선배 김현준, 동기 오세웅과 함께 트리오를 형성하면서 삼성전자의 1980년대를 이끌었다. 선수 시절 주장이기도 했다. 다만 1980년대 스타였기에 21세기 농구팬들에게는 삼성 선수로서의 인지도가 적고 지도자 생활도 대구 동양 시절의 전성기와 전자 라이벌이기도 한 창원 LG의 신바람 시절을 보냈기에 아는 사람만 알고 있는 편이다.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농구 금메달 감독이기도 하다. 사실 숨어있는 삼성의 레전드로 꼽히고 있다. 현역시절 등번호는 12번이었다. 하지만, 동양-LG의 색이 강하면서 오히려 모교 대선배지만 실업 라이벌이었던 이충희가 더 부각되는 편이다.
- 세 번째 인물은 문경은 現 SK 감독이다. 선수 생활 말년을 SK에서 은퇴했고 영구결번도 지정되면서 SK맨 이미지가 강해졌지만[10] 그가 대학 졸업 후 본격적인 직업선수 생활을 처음 시작한 팀은 삼성전자 실업 농구단이었고, 커리어 하이 시즌도 삼성에서 보냈으며 삼성에서 챔피언결정전 우승도 했고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삼성을 떠나야 했던[11] 삼성의 레전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트레이드와 함께 2005-2006 시즌 중 SK 나이츠의 선수가 된 이후 D 리그 코치를 거쳐 LTE급 감독이 된 후 SK의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18년만에 서울 SK 나이츠를 우승시키면서 이젠 SK 레전드라고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문경은이 가고 우지원이 아닌 서장훈이 온 격.
- 주희정은 KBL 출범 이후 진정한 삼성의 레전드다. 1998년 입단 이후 2005년까지 전성기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김동광 감독의 직속제자였는지 이적과 함께 세월이 흐른 뒤 친정에 돌아온 삼성맨이다. 김동광 감독의 트레이드 이후 강혁과 함께 가드 왕국 삼성의 핵심이었다. 물론 처음부터는 아니었다. 리딩이 부족하고 슛이 약한 편견을 오직 반복된 연습과 훈련 그리고 회고로 최고에 오른 KBL 레전드 12 출신이다. 00-01 팀 유일의 KBL 통합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05-06 시즌 스승이었던 김동광 감독의 부름을 받고 SBS 스타즈의 후신인 KT&G 카이츠에서 제2의 전성기를 보냈다. 삼성 출신이었던 김진 감독이 직접 트레이드로 떠난 SK 나이츠에서도 식스맨을 받아들이면서 희생을 했고 마침내 친정으로 돌아와서 15-16 시즌과 16-17 시즌을 보낸 이후 은퇴를 하게 되었다. 은퇴 이후 모교로 돌아가면서 학생신분과 함께 코치를 시작하면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고려대 감독대행을 거쳐 마침내 고려대 농구부의 감독이 되면서 제자들을 지도하면서 향후 삼성의 지도자로 돌아올 노력을 준비하고 있다.
- 강혁은 다음은 2000년대 초반부터 중후반까지 프랜차이즈 스타로 성장한 삼성의 진정한 프렌차이즈 스타다. 1998년 입단 이후 식스맨을 거쳐 2005년부터 베스트로 성장한 케이스다. 삼성이 직접 키운 가드 왕국의 핵심. 강혁은 삼성에 입단한 후 꾸준히 기량이 발전하였다. 식스맨으로 뛰면서 최우수 후보선수상을 수상했었던 강혁은 그뒤 군복무후 다시 복귀해서 기량이 상승하다가 마침내 2005-06시즌 플레이오프에서 팀의 7전전승 플레이오프 우승을 이끄는 대활약을 펼치면서 생애 첫 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했었다. 후에도 꾸준히 주전가드로 활약하면서 은퇴하면 차기 삼성의 지도자 자리는 사실상 예약된것 처럼 보였었는데... 어느 금지어가 감독으로 부임한뒤 강혁을 트레이드 시키면서 결국 삼성에서 끝끝내 은퇴를 하지 못했고 전자랜드에서 은퇴했다. 훗날 지도자로 삼성에 돌아올 가능성도 있지만 트레이드 당시 본인 스스로 상당한 충격을 받았기에 지도자 강혁의 삼성 컴백이 쉽게 이뤄질 가능성은 미지수다. 실제로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삼성의 전자라이벌팀인 LG에서 코치생활을 시작했고, LG 코치직에서 물러난뒤에도 유도훈 감독의 부름을 받고 전자랜드로 갈 정도로 가드 코치로서 능력은 있다. 물론 수석코치는 아니지만 향후 보아야 할 삼전드.
- 이규섭은 KBL 출범 이후 삼성 썬더스의 원 클럽 맨이며, 2000년에 입단 후 2013년까지 단 한 번도 이적한 적이 없었다. 이는 삼성이 프로 전환 이후 처음으로 가진 원클럽맨이다. 데뷔 시즌에 00-01 KBL 통합우승을 경험했고 05-06 KBL 플레이오프 우승을 경험했다. 추가로 대표팀에 승선하면서 국제대회 경험도 풍부한 삼성맨이다. 추가로 삼성의 프로 전환 후 처음으로 신인상을 수상했다. 스타 군단 삼성의 유일한 성골로서 12-13 시즌까지 14년간 삼성 썬더스의 선수로 활약했다. 말 그래도 KBL 출범 이후 삼성의 역사와 함께한 성골 중의 성골이다. 현역에서 은퇴 이후 14-15 시즌부터 코치를 거쳐 17-18 시즌부터 사실상 수석코치를 맡고 있다. 코치로서도 삼성 원클럽맨 커리어를 이어가는 중이다.
- 삼성 썬더스는 KBL 레전드지만 특정 팀의 상징으로 남지는 않은 특이한 커리어를 가진 서장훈과도 긴 인연이 있다. 서장훈의 프로 경력 중 가장 오랫동안 소속돼 있던 팀이 삼성[12] 이다.[13] 정작 서장훈이 입단하기 전에는 삼성이 악연과도 같은 팀이었다. 서장훈이 목 보호대를 차고 몸싸움에서 힘겨워하며 커리어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엔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가해졌던 타 팀들의 린치 수준을 방불케 하는 수비가 결정적이었는데, 삼성전자 농구단은 이 중에서도 심했던 것.[14] 하지만 서장훈이 첫 FA에서 삼성을 선택하면서 모든 게 바뀌게 된다. 비록 대학 선배 우지원이 보호선수 제외로 팀을 나가는 불상사가 발생했지만, 서장훈은 삼성 유니폼을 입고 팀의 9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대기록의 시작점이 됐다. 또한 05-06시즌 정규리그 MVP를 거머쥐면서 현재까지도 팀의 마지막 우승인 05-06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비록 그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판짜기가 주특기인 안준호 감독이 서장훈을 의도적으로 배제해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그 때문인지 갈등이 생겨 KCC로 이적했지만, 서장훈은 삼성에서 역사를 썼다. KCC로 팀을 옮길 때에는 현재까지도 삼성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인물을 자신으로 인해 삼성에 불러오기도 했다. 바로 그의 보상선수로 삼성에 온, 현 감독 이상민.[15]
- 이상민은 현대-KCC의 레전드다. 하지만 선수로서의 마지막 3시즌과 코치, 감독 커리어는 서장훈의 FA 당시 보상선수로 온 삼성에서 이어가고 있다. 더구나 석연찮았던 이적 과정 이후 이상민이 KCC를 비판했고, 이후 KCC는 삼성에서 은퇴한 이상민의 영구결번을 선수 의사 확인 없이 결정하며 관계가 악화됐으니 삼성 입장에서는 가드왕국의 선봉장이자 단일 재임 기준 구단 역대 두 번째로 긴 재임기간[16] 을 가진 감독을 상징적인 인물 중 하나로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삼성 이적 이후 이상민은 노쇠화를 피해갈 수 없다 보니 기록의 하락을 피하진 못했다. 그러나 개인 최다 득점인 35점을 마크하고, 플레이오프에서 친정 KCC를 깨는 등 삼성에서 핵심 역할 자체만큼은 제대로 했다. 더구나 스타 플레이어와 마케팅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옆집 SK 나이츠에 뒤져 서울 농구팬들의 마음을 못 얻었던 삼성을 자기 팬덤 하나만으로 인기팀으로 만들었다. 김상준 감독으로부터 시작돼 이상민 감독 본인 시기까지도 완전히 지우지 못한 암흑기에도 잠실실내체육관 관중석을 지킨 팬들의 일부 기반 또한 이상민 감독을 응원하는 사람들이다. 은퇴 후 지도자 연수와 코치를 거쳐 이상민은 삼성의 감독이 됐고, 암흑기에 간 팀을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에 진출시키며 불꽃을 태웠다. 그의 삼성 사령탑 생활은 현재 진행형이다. 2020-21 시즌을 앞두고 2년 재계약에 성공하면서 만약 재계약 기간을 모두 채운다면 역대 삼성 감독중 가장 오랫동안 감독직을 연임하개 된다.
- 삼성의 현 시기를 설명할 수 있는 선수 1. 이관희는 프로 초창기에는 주로 식스맨으로 출전했고 그마저도 실수가 가끔 나오는 바람에 김동광 당시 감독에게 "볼이 뜨겁냐?"는 개그성 지적까지 받았다. 더구나 경기 도중 상대팀 선수들과 충돌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보니 멘탈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다. 그러나 상무에 다녀온 후 특유의 스피드와 운동 능력을 통한 수비로 양동근 등 타 팀의 주요전력을 묶으며 가능성을 보이더니, 3점슛을 장착한 이후엔 아예 팀의 에이스로 거듭났다. 17-18시즌 40%대의 3점슛 성공률(전체 4위)을 마크하며 완전한 주전이 됐고 FA를 챙기는 등 초창기에 비해 크게 나아지며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됐다. 대대적인 변혁기였던 삼성에서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단 한순간도 삼성을 떠나지 않았던 선수이기도 하다. 안준호 감독의 말년부터 김상준 감독, 김동광 감독, 이상민 감독 시기까지 이적 없이 삼성 소속을 유지했던 유일한 선수다. 하지만 2021년 결국 팀의 숙원이었던 포인트가드를 대가로 창원 LG 세이커스로 이적했다. 2010년대 삼성의 외곽 대표로 이 선수가 있다면, 골밑에는 이관희의 대학 후배인 다음 선수가 있다.
- 삼성의 현 시기를 설명할 수 있는 선수 2. 김준일은 빅맨난에 시달리던 2014년 지명돼 최저승률 꼴찌부터 챔피언결정전 진출까지 2010년대 중후반 삼성의 역사를 쓴 선수다. 이 선수의 존재로 인해 팀은 라이온스나 미네라스 같은 스코어러 외국인 선수를 높이의 손해 없이 지명할 수 있었고, 빅맨 외국인과의 궁합도 잘 맞아 라틀리프가 있던 시기에는 플레이오프 진출과 준우승 등 굵직한 성적을 함께했다. 팀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기둥임은 물론이고 초중고부터 대학 시절, 현재까지도 서울에서만 뛰고 있는 프랜차이즈 스타. 유재학 감독도 삼성의 중심은 김준일이라고 평할 정도다.
- 안준호 前 감독은 사실 선수시절을 삼성 썬더스의 전신인 삼성전자 농구단에서만 뛰다 은퇴한 인물이다. 하지만 삼성에게 있어 선수시절보다 감독시절 그가 끼쳤던 영향이 매우 크다.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역대 삼성 감독중 최장기간 연임하면서 1번의 우승과 2번의 준우승을 기록했을 만큼 삼성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명장이었다. 특히 2005-06 시즌 플레이오프부터 챔피언결정전까지 7전 전승이라는 어마어마한 대 업적을 이뤄내며 우승을 기록했던건 아직도 많은 삼성팬들이 그리워하고 있다.
- 김동광 前 감독은 수원 삼성 썬더스 감독 시절 부임 후 포인트 가드 주희정을 영입하고 신인 드래프트에서 슈팅 가드 강혁을 지명하면서 가드 라인 보강에 성공하면서 전력을 올리기 시작했다. 또한 외국인 선수 영입도 휼륭하게 해내었고, 기존의 문경은 외에도 신인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한 이규섭까지 가세하면서 포인트 가드 주희정-슈팅 가드 강혁-스몰 포워드 문경은-파워 포워드 아티머스 맥클래리-센터 무스타파 호프라는 정통 베스트 5를 시작으로 식스맨에 가드 김희선과 포워드 강병수와 이규섭 그리고 센터 박상관과 이창수까지 선수층도 좋아졌고, 이 기세를 바탕으로 2000-2001 시즌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이후 4강 플레이오프에서 SBS 스타즈를 3승 1패로 창단 첫 KBL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고, 2000-2001 KBL 챔피언결정전 상대인 전자라이벌 LG 세이커스를 4승 1패로 꺾고 통합우승을 이뤄내는데 성공했다. 이는 현재까지 삼성의 유일한 통합우승 기록이다. 이후 KBL 출범 원년 시절 부임했던 또 다른 친정인 SBS 스타즈 감독에 재복귀와 인수된 KT&G 카이츠 감독을 재임하면서 방송해설과 KBL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내기도 했다. 더 이상의 우승을 하지 못하면서 삼성맨의 이미지가 희석되던 시점이던 2012-13 시즌을 앞두고 60대 최고령의 나이에도 놀랍게도 다시 삼성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 이때 인터뷰에서 무너진 명가 삼성을 재건하기 위해 다시 돌아왔으며 농구열정을 불태우는 의지라고 밝혔고 이는 많은 삼성팬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결국 끝까지 최선을 다한끝에 전년도 최하위팀을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데 성공하면서 많은 칭송을 받게 되었다. 비록 다음시즌 성적 부진으로 자진 사퇴 했지만 김동광 감독이 보여주었던 삼성에 대한 애정은 SBS 시절보다 더 강했으며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참고로 현재까지 역대 삼성 감독중 가장 오랫동안 감독직을 역임한 감독이 바로 김동광 감독이다.
6. 파이널 MVP
7. 역대 감독
- KBL 출범 이후만 기재
8. 역대 성적
- 실업시절과 비교하면 확실히 아쉬운 성적이다. 승률이 5할 미만일 뿐만 아니라 삼성보다 승률이 낮은 팀이 2팀밖에 안될 정도이다. 특히나 2010년대 승률은 전체 꼴찌를 기록할 정도였다. 때문에 삼성은 역사만 긴 팀이지 명문팀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이 팀보다 역사가 한참 짧은 이웃집이 2010년대에 우승 1번에 준우승 1번을 기록할 만큼 잘나갈 정도이니...[18]
9. 선수단
10. 응원단
치어리더 3명을 제외한 응원단이 야구팀 KT 위즈의 응원단이다.
11. 유니폼
12. 사건 사고
13. 타 구단과의 관계
13.1. 서울 SK 나이츠
S-더비 항목 참조. 2001-2002 시즌을 앞두고 당시 KBL에서 KBL 플레이오프 챔피언 팀들에 대한 서울연고 입성심사를 했다. 여기에 당첨된 게 수원 삼성과 청주 SK였다. 3년간 잠실실내체육관을 홈으로 치렀으나 2004-2005 시즌부터 SK가 잠실학생체육관으로 홈 경기장을 바꾸면서 현재에 이르게 된다. 추가로 2017-2018시즌부터 현재의 S 더비 명칭과 함께 양 팀이 서로 만나면 홈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한다.
13.2. 창원 LG 세이커스
이 항목 참조. 원년 구단인 삼성과 1997-1998 시즌부터 가세한 LG를 의미. 공식명칭은 전자라이벌전. 세계적인 전자회사로 심지어 야구에서도 치열한 경쟁관계다. 실제로 두 팀은 모기업 광고가 전자업계다. 추가로 트레이드도 같이 하지 않는다. 2008~2009 시즌부터 2018~2019 시즌까지는 양 팀이 서로 홈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했다. 최근에는 예전같지 않지만 감독을 기준으로 과거의 라이벌 스토리가 짙게 깔려있다. 삼성 출신이 한 때 LG의 감독 혹은 선수가 되기도 했고 LG 출신이 삼성에 거쳐가기도 했다.
13.3. 전주 KCC 이지스
- 이 항목 참조.
- 과거 현대시절부터 이어진 유서 깊은 역사로 슛도사 이충희와 전자 슈터 故 김현준의 대결이 시작이었다. 프로에 와서는 라이벌 관계가 사그라드나 싶었지만 2007년 삼성에서 뛰던 서장훈이 KCC로 이적하면서 보상선수로 이상민을 데리고 가면서 KCC 팬들이 분노를 하는 일도 있었다. 농구대잔치 세대 선수들이 물러난 후에는 이정현과 이관희의 악연 등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13.4.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 이 팀 역시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라이벌 관계가 있었다. 이충희와 故 김현준의 라이벌 관계에 허재라는 신성이 등장했고, 이충희, 김현준이 물러난 후 삼성에는 문경은이라는 대형신인이 들어오게 된다. 프로 전환 후 21세기에는 두 팀간의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에서 극과 극을 달리기도 했는데 정규리그의 경우 모비스가 삼성을 상대로 23연승을 기록한 바 있었고, 플레이오프에서는 2005~2006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난 이들은 삼성이 4:0으로 전승 우승을 하고 2008~2009 시즌 4강 플레이오프에서 당시 1위로 4강에 직행한 모비스가 4위로 6강에서 창원 LG를 이기고 올라온 삼성에게 1승 3패로 패배하면서 KBL 출범 이후 처음으로 1위팀이 4강에서 탈락했다.
13.5. 원주 DB 프로미
- 이 팀 역시 KBL 원년 시절부터 라이벌 관계가 있었다. 전신 나래 시절 기아를 떠날려 했던 허재 영입전으로 경쟁했고 이후 인수된 TG 삼보 시절 삼성 매니저 겸 삼성 코치였던 전창진은 허재를 의식해서 그런지 수비코치직을 주었다. 추가로 양경민과 김승기를 트레이드로 데리고 왔다. 심지어 김주성이 FA로 풀릴 때 영입전을 추진하기도 했다. 전창진 사단이라 불리우는 전창진,허재,김승기 3인방은 감독으로 삼성에 모두 비수를 꽃았다. 플레이오프에서는 2007~2008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난 이들은 동부가 삼성에 4:1로 우승을 하게 되며 2년전 2005-2006 KBL 플레이오프 7전 전승의 삼성을 넘게 된다.
14. 기타
- 썬더라는 팀 이름을 무려 NBA 구단보다 먼저 사용하였다. 그 쪽은 단수형이고 이 쪽은 복수형이라는 차이가 있는데, 사실 thunder(천둥)은 셀 수 없는 명사이기 때문에 복수형으로 쓰는 건 문법적으로 틀린 것이다.[20]
- 한국 프로농구 팀 중 올드 유니폼이 최초로 도입되었다. 상하의 모두 짙은 군청색(또는 빨간색)에 앞에는 한자로 '삼성전자'를 새겨 넣었다. 창단 30주년을 맞은 2007-08 시즌부터 2월 말~3월 초에 이 옷을 입고 경기를 했다. 창단 기념 경기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과거 라이벌 관계를 감안해 대전 현대의 후신인 전주 KCC와 치르도록 미리 일정을 정한다. 그런데 2014~2015 시즌에는 기아자동차 농구단의 후신인 모비스와의 경기[21] 에서 이 유니폼을 입고 33점 차로 대패했다(...). 2019-20시즌 5라운드에서는 서울특별시교육청 학생체육관에서 열린 SK 원정 S-더비 를 클래식 데이로 치르기로 양팀이 합의해 상징색이 붉은 홈팀 SK는 푸른색 올드 유니폼[22] 을, 푸른색을 쓰는 원정팀 삼성은 붉은색 올드 유니폼[23] 을 입고 경기를 치렀다. 이렇게 유니폼 색을 맞바꾼 양팀이 현재의 SK 컬러에 맞춘 학생체육관의 붉은 코트 위에서 경기를 하다 보니 실제와 다르게 삼성의 홈 경기 같은 착시효과를 일으키기도 했다.
- 홈 경기장인 잠실실내체육관이 연말에는 콘서트장 대관이 쇄도하기 때문에 연말에는 원정 경기를 주로 다닌다. 그래서 타 구단과 다르게 크리스마스나 새해 이벤트를 할 수 없어서 고민이라고 한다.
- 신인 드래프트 운이 지지리도 없기로 소문난 팀 중 하나다. 2000년대 이후로 이규섭이 현재까지 유일한 삼성의 1라운드 1순위 지명선수이고 이후로는 1순위에 전혀 걸리지 않고 있다. 2010년대 들어서 2순위에 두번 걸리면서 임동섭과 김준일을 지명했었던걸 제외하면 눈에 띌 정도의 행운의 픽 순위를 얻지 못하고 있다.[25] 그러다 마침내 2020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에 걸리면서 2000년 1순위로 이규섭을 지명한 이후 20년만에 잔혹사를 끝내게 되었다.
- 프로화 이후 실업농구에 비해 아쉬운 성적인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나 2019-20 시즌 기준 삼성보다 승률에서 낮은 팀이 단 두팀에 불과할정도다. 그래도 원년 시즌에는 하위권에 머물다가 98~99 시즌 이후로는 성적이 곧바로 상승곡선을 타게 되었고 챔피언 결정전에서 2회 우승, 2회 준우승을 비롯해 포스트시즌에 많이 진출했으나 삼성 썬더스 역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악명 높은 이 사람의 등장 이후로 성적은 곤두박칠치게 되었고 이 와중에 꼴찌는 2번이나 했다.
- 10개 구단들 중 가장 먼저 플레이오프에서 모든 구단을 다 만난 팀이기도 하다.(2007-2008 4강 PO 전주KCC전에 달성)
- 2015년 2월 18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4-2015 KCC프로농구 삼성:SK 경기에서 걸그룹 여자친구의 멤버 유주가 애국가를 제창하고 소원이 시투를 했다. 또한 이날 〈유리구슬 (Glass Bead)〉을 부르며 축하공연도 선보였다.
15. 둘러보기
[1] 국문 엠블렘은 이렇게 생겼다.
[image] [2] 제일기획 대표이사.[3] 같은 모기업 여자농구단 단장도 같이 맡는다.[4] 타 체육관과 달리 천장에 현수막을 걸 수 없는 잠실실내체육관의 특성상 영구결번판은 작은 액자로만 설치돼 있다가, 2019-20시즌부터 기자석 테이블 전체를 래핑한 카드섹션의 형태로 재탄생했다.[5] 삼성 트레이닝 센터 내[6] 썬더스 경기시작을 알리는 음악이다.[7] 직접적인 운영 주체는 2014년부터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바뀌었지만 두 회사 모두 엄연한 삼성그룹 계열사이고 43년째 삼성 농구단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으니 모기업이 바뀌지 않았다는 표현도 틀리지는 않다. 어쨌든 이런 전통을 가진 덕분에 KBL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올드 유니폼 데이 이벤트 경기를 꾸준히 하고 있다.[8] 예외조항이 없는 하드캡인데다가 보상선수 제도 때문에 다른 팀과 차별되는 돈지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FA 때 크게 질러봤자 전 시즌 연봉 30위 이내 선수였다면 보상선수 1명을 내줘야되고, 한 선수에게 거액의 연봉을 준다면 그만큼 다른 선수에게 주는 연봉이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 결국 쓰는 돈은 똑같다. 그나마 돈 쓸 수 있는건 경기장 시설이나 연습 시설 정도인데 여기에 돈을 크게 쓰는 것도 아니다. 결국 모기업이 삼성 계열이라는 데서 이득을 보는건 의료제도 정도 밖에 없다. 부상 후 치료 및 재활 과정은 정말 잘해준다고.[9] 두 선수 모두 빼어난 성적과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던 선수라는 점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삼성의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기에는 다소 논란이 많다. 이상민은 삼성 선수보다 현대-KCC 선수의 이미지가 강했고 서장훈은 전성기 시절을 삼성에서 보냈으나 저니맨의 이미지가 강하다. 실제로 이상민은 KCC에서 영구결번의 영예를 안았고 서장훈은 영구결번 대신 KBL 사상 최초로 은퇴 투어의 주인공이 됐다.[10] 정작 문경은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소속팀은 삼성도 SK도 아닌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였다.[11] 김동광 감독과 팀내 입지를 놓고 갈등을 벌였고 결국 대학 후배인 우지원과 트레이드됐다.[12] 삼성 5년, SK 4년, 전자랜드 3년, KCC/LG/KT 각 1년[13] 이 때문인지 삼성은 서장훈과 현 감독 이상민의 번호로 11번을 영구결번하려다 이상민의 현대-KCC맨으로서의 상징성과 서장훈의 저니맨 커리어 등 여러 이유 때문에 실패했다.[14] 농구대잔치 시절 서장훈을 상대로 심각하다 싶을 정도의 몸싸움을 걸었던 박상관과 이창수의 당시 소속팀이 삼성이었다.[15] 한참이 지난 2015-16시즌 6강 플레이오프에서 서장훈은 푸른 티셔츠를 든 채 이상민 감독을 응원하기 위해 삼성의 홈 구장 잠실실내체육관을 찾았다. [16] 단일 재임기간이 가장 긴 삼성 감독은 안준호 전 감독이다. 나간 후 돌아온 감독까지 합치면 김동광 전 감독이 1위, 안준호 전 감독이 2위고 이상민 감독은 3위가 된다.[17]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시즌 조기종료 및 플레이오프 미개최[18] 다만 SK도 명문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19] 17-18 시즌부터 수석코치[20] 유타 재즈, 마이애미 히트 등도 팀 이름을 단수로 쓰는 걸 보면 알 수 있다.[21] KCC와 모비스 모두 범현대가 기업이다.[22] 프로 초창기까지만 해도 SK의 상징색은 블루였으며, 같은 모기업의 SK 와이번스도 2000년대 중반까지 푸른 유니폼을 입었다.[23] 삼성전자 실업농구단 시절[24] 이 영화에 출연하는 닉스 선수역할 중 가장 비중이 높은 이는 건방진 슈퍼스타 스테이시 패튼 역의 말릭 실리 (케빈 가넷의 전 동료이자 가장 존경하던 선수)였고 그나마 현명한 베테랑 선수로 출연한 존 샐리도 제법 대사가 있지만, 싱글턴은 큰 비중이 없다. 다만 TV에서 방영할 때는 싱글턴이 화면에 나올때마다 "버넬 싱글턴"이란 자막이 떴다.[25] 이 두번의 2순위도 전시즌 꼴찌를 했었기 때문에 픽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던 상황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image] [2] 제일기획 대표이사.[3] 같은 모기업 여자농구단 단장도 같이 맡는다.[4] 타 체육관과 달리 천장에 현수막을 걸 수 없는 잠실실내체육관의 특성상 영구결번판은 작은 액자로만 설치돼 있다가, 2019-20시즌부터 기자석 테이블 전체를 래핑한 카드섹션의 형태로 재탄생했다.[5] 삼성 트레이닝 센터 내[6] 썬더스 경기시작을 알리는 음악이다.[7] 직접적인 운영 주체는 2014년부터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바뀌었지만 두 회사 모두 엄연한 삼성그룹 계열사이고 43년째 삼성 농구단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으니 모기업이 바뀌지 않았다는 표현도 틀리지는 않다. 어쨌든 이런 전통을 가진 덕분에 KBL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올드 유니폼 데이 이벤트 경기를 꾸준히 하고 있다.[8] 예외조항이 없는 하드캡인데다가 보상선수 제도 때문에 다른 팀과 차별되는 돈지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FA 때 크게 질러봤자 전 시즌 연봉 30위 이내 선수였다면 보상선수 1명을 내줘야되고, 한 선수에게 거액의 연봉을 준다면 그만큼 다른 선수에게 주는 연봉이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 결국 쓰는 돈은 똑같다. 그나마 돈 쓸 수 있는건 경기장 시설이나 연습 시설 정도인데 여기에 돈을 크게 쓰는 것도 아니다. 결국 모기업이 삼성 계열이라는 데서 이득을 보는건 의료제도 정도 밖에 없다. 부상 후 치료 및 재활 과정은 정말 잘해준다고.[9] 두 선수 모두 빼어난 성적과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던 선수라는 점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삼성의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기에는 다소 논란이 많다. 이상민은 삼성 선수보다 현대-KCC 선수의 이미지가 강했고 서장훈은 전성기 시절을 삼성에서 보냈으나 저니맨의 이미지가 강하다. 실제로 이상민은 KCC에서 영구결번의 영예를 안았고 서장훈은 영구결번 대신 KBL 사상 최초로 은퇴 투어의 주인공이 됐다.[10] 정작 문경은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소속팀은 삼성도 SK도 아닌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였다.[11] 김동광 감독과 팀내 입지를 놓고 갈등을 벌였고 결국 대학 후배인 우지원과 트레이드됐다.[12] 삼성 5년, SK 4년, 전자랜드 3년, KCC/LG/KT 각 1년[13] 이 때문인지 삼성은 서장훈과 현 감독 이상민의 번호로 11번을 영구결번하려다 이상민의 현대-KCC맨으로서의 상징성과 서장훈의 저니맨 커리어 등 여러 이유 때문에 실패했다.[14] 농구대잔치 시절 서장훈을 상대로 심각하다 싶을 정도의 몸싸움을 걸었던 박상관과 이창수의 당시 소속팀이 삼성이었다.[15] 한참이 지난 2015-16시즌 6강 플레이오프에서 서장훈은 푸른 티셔츠를 든 채 이상민 감독을 응원하기 위해 삼성의 홈 구장 잠실실내체육관을 찾았다. [16] 단일 재임기간이 가장 긴 삼성 감독은 안준호 전 감독이다. 나간 후 돌아온 감독까지 합치면 김동광 전 감독이 1위, 안준호 전 감독이 2위고 이상민 감독은 3위가 된다.[17]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시즌 조기종료 및 플레이오프 미개최[18] 다만 SK도 명문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19] 17-18 시즌부터 수석코치[20] 유타 재즈, 마이애미 히트 등도 팀 이름을 단수로 쓰는 걸 보면 알 수 있다.[21] KCC와 모비스 모두 범현대가 기업이다.[22] 프로 초창기까지만 해도 SK의 상징색은 블루였으며, 같은 모기업의 SK 와이번스도 2000년대 중반까지 푸른 유니폼을 입었다.[23] 삼성전자 실업농구단 시절[24] 이 영화에 출연하는 닉스 선수역할 중 가장 비중이 높은 이는 건방진 슈퍼스타 스테이시 패튼 역의 말릭 실리 (케빈 가넷의 전 동료이자 가장 존경하던 선수)였고 그나마 현명한 베테랑 선수로 출연한 존 샐리도 제법 대사가 있지만, 싱글턴은 큰 비중이 없다. 다만 TV에서 방영할 때는 싱글턴이 화면에 나올때마다 "버넬 싱글턴"이란 자막이 떴다.[25] 이 두번의 2순위도 전시즌 꼴찌를 했었기 때문에 픽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던 상황에서 나온 결과물이다...